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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서쪽 산

​- 김먼지 @_2013614

우산관 유생들 전체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있다.

한 달 중 보름달이 가장 밝은 날, 해시 이후에 서쪽 산으로 가면 절벽 밑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울음소리가 사람을 홀려서,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절벽에 투신하게 된다는 소문이 있다.

얼마 전 이대감집네 어렸을 적 사라졌던 막내아들이 돌아온 즈음부터 절벽에서 떨어져 사망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에 대감 집에 막내아들이 귀신을 달고 온 것이 아니냐 하였지만, 대감 집에서는 소문을 아는지 모르는지 겨우 만난 막내아들을 어여뻐하며 날마다 잔칫날인양 얼굴에 웃음꽃을 싱글벙글 달고 있었다. 아무리 성질 고약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차마 그 얼굴에 침 뱉을 수는 없는 터. 다들 쉬쉬하며 소문을 잠재우던 찰나에 일이 터졌다.

대감 집의 막내아들이 보름달이 가장 밝은 날 사라졌다는 것. 당연히 대감 집사람들은 있는 대로 뛰쳐나와 온 동네를 뒤져보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자포자기한 상태로 들어가는 대감에게 동네 작은 꼬마가 말을 걸었다.

 

"대감님, 서쪽 산에서도 한번 찾아보셨습니까?"

 

다들 서쪽 산은 안된다며 꼬마 아이의 말을 애써 포장하고 못 들은 척 화제를 돌리려 하였지만, 꼬마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소리치며 말했다.

 

"막내 도련님이 항상 서쪽 산을 바라보며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못 들으셨습니까?"

 

그 말을 들은 대감은 손을 벌벌 떨며 서쪽 산에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서쪽 산 아래 바다에서 절벽에서 떨어진 채로 숨을 거둔 막내아들이 발견되었다. 달빛이 유난히 밝던 밤. 막내아들은 이리저리 치이고 부서진 데다 한번 짐승에게도 습격을 당했는지 조각조각 나 있는 모습이 차마 뜬 눈으로 지켜볼 수 없을 정도라 다들 눈을 피하곤 조용히 대감의 반응을 지켜봤다. 대감은 흐느끼듯이 울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반복했는데, 단순한 단어인 그 말은 흐느끼며 슬퍼하는 대감의 표정과는 모순되게 이러했다.

 

"드디어"

 

그 후로 그 절벽에 대해 돌았던 흉흉한 소문은 일단락되었지만, 동네 사람들은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 다음 달이 되어도, 그다음 달이 되어도, 달이 6번 모습을 바꿔도, 보름달이 밝은 날 서쪽 산 절벽에서 들리던 사람을 홀리는 울음소리가 어느새 웃음소리로 바뀌어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잃어버린 가족을 드디어 찾은 듯한 반가움에 형제자매들이 까르르거리는 웃음소리가 서쪽 산에 울려 퍼졌다.

 

이런 연유로 언제부턴가 이 동네에서는 보름달 밝은 날에는 일찍 집에 들어와야 하고, 다음날 절벽 밑 바다에 나가 혹시라도 사망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보는 관례가 생겼다. 그저 아이들에게 보름달이 밝은 날 서쪽 산에는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살고 있으니 얼른 집에 들어오라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동화가 생겼다.

 

 

"아가 이번에 수 놓은 이불 팔려면 서쪽 산 넘어가야 하는데, 이번에는 우리 동네 장 들어오면 파는 건 어떠니?"

"왜요? 저번에도 넘어가서 팔고 오시지 않으셨어요?"

"응. 그랬지. 하지만 곧 보름달이 뜨는 날이라 서쪽 산 넘어 장에 갔다가 때를 놓쳐 못 돌아올까 봐 그런단다."

"보름달이 뜨는 날에 서쪽 산이 어떻길래 그러시나요?"

"보름달이 뜨는 날 서쪽 산에는 기이한 괴물들이 살고 있단다."

"괴물이요?"

 

지금부터 엄마가 아주 옛날 옛적 이야기를 해줄게, 옛날 한양에 기이한 형제들 여섯이 나타난 적이 있어.

그 이방인 형제들은 푸른 눈, 노란 머리카락, 검은 피부, 높은 코 등등 이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외모를 가졌었어. 푸른빛과 함께 이곳에 나타난 그들에게 나라 전체의 이목이 쏠렸어. 하지만 사람들이 이방인을 기이하게 여기고 이목이 쏠린 건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어.

첫째 루서는 덩치가 마치 산속에서 만난 곰처럼 크고 엄청난 괴력을 가졌어. 한양에 제일간다는 씨름선수도 힘을 못 쓰고, 집채만 한 바위도 옮길 수 있었지.

둘째 디에고는 신통방통하게도 날아가는 물건을 다스릴 수 있었지. 그 때문에 동시에 쏜 화살이 이리저리 뱀처럼 휘어 상대의 활을 방해하곤 유유히 궤적 한가운데에 꽂힐 정도였지. 

셋째 앨리슨은 말 하나로 천하를 다스리는 능력이었는데, 지나가던 사람에게 "내가 소문을 들었는데, 네가 다시 집에 간다더라."라고 말하면 생전 처음 본 사이에도 앨리슨의 말에 복종하고 집으로 곧장 돌아갔지.

넷째 클라우스는 죽은 혼을 볼 수 있으며 부를 수도 있었어. 그의 능력을 듣자마자 꺼림칙하다며 자리를 떠난 사람들이 많았지.

다섯째 파이브는 처음에 형제들이 나타난 것과 같은 푸른빛 함께 땅과 시간을 접어 다니는 사람이었어. 

일곱째 바냐는 허공에 진동을 일으켜 물건을 밀어내거나 부수는 능력이 있었지.

 

"어머니, 여섯째 이야기를 안 해주셨어요."

"그들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가 잃어버린 형제를 찾아오게 된 것이었단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형제가 여섯째였지."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여섯째를 찾아다니던 어느 날 이곳에 한양에서 온 형제들이 도착했어. 동네를 돌아다니며 자잘한 사건을 해결해주기도 하고 또 되려 자잘한 사고를 만들기도 하면서 잃어버린 형제를 찾고 있었지. 형제들이 동네를 다 돌아볼 즈음, 이곳 바닷가 마을에 큰 자연재해가 일어났어. 형제들은 가진 능력으로 열심히 고을 사람들을 지키려고 노력했어. 

루서는 사람들이 떠내려가지 않게 바위로 벽을 세우고, 또 휩쓸려가는 사람들을 건져냈어.

디에고는 화살로 튼튼한 나무에 사람들의 옷가지를 고정해 바다로 빨려가지 못하게 했지.

앨리슨은 사람들을 전부 대피 장소에 모이게 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진정시켰어.

클라우스는 혼을 불러내 사람들을 찾아내고, 어디에 누가 숨어있는지 알아냈어.

파이브는 멀리 있는 사람에게 소식을 전한 뒤, 물속에 빠진 사람들을 육지로 올려보내고 있었어.

바냐는 대피 장소에 해일이 닥치면 물을 밀어내고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었어.

자신들이 각자 가진 능력으로 자연재해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수많은 사람을 사람 여섯이서 지키기란 쉽지 않았고, 신이 내린 재앙은 피해갈 수 없었어. 바다가 육지를 삼키려는 듯 커다란 해일은 끝을 모르고 육지로 아가리를 벌렸고, 수많은 사람이 속수무책으로 물속에 빨려 들어갔어. 결국, 동네는 쑥대밭이 되고 고을 전체에 살아남은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였어. 물론 형제들도 죽음을 피해 갈 수는 없었어. 사람들을 지키다 결국 바다에 빠져 여섯 명 모두 목숨을 잃었어. 쑥대밭이 된 마을에 남은 사람들이 여섯 형제와 다른 고을 백성들을 그리워하고 서쪽 산 절벽 아래에서 영혼을 달래는 제사를 치렀어.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섯 형제의 부탁을 잊어버렸지. 형제들은 능력으로 도저히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자마자 사람들을 붙잡고 시간선에 고립되어있을 여섯째를 찾아 여섯째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 해주고 보듬어 달라는 당시엔 이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반복했었어.

 

 

 

엉겹의 세월이 지나 한양에서 이대감이라는 사람이 내려왔지. 어떤 연유로 한양에서 이 작은 시골 바닷가 마을에 왔는지는 아무도 몰랐어. 그 집엔 막내아들이 있었는데 어렸을 적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 학문을 넓히러 갔다가 그만 연고가 끊어져 잃어버렸다고 했지. 막내아들을 잃은 슬픔을 견디고 품계도 얻어내며 열심히 살고 있었어. 하지만 대감의 오랜 지인들은 대감의 행동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어.

얼마 뒤, 놀랍게도 죽은 줄만 알았던 막내아들이 나타났어. 막내아들은 연고가 끊어지고 잃어버린 사이 바다 건너 귀하신 분의 수양 자녀가 되었고, 꼭 이대감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지. 대감은 막내아들을 품에 안고 덩실덩실 춤을 췄지. 날마다 대감집에는 하하 호호 웃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어. 마지 하루하루가 잔칫날인 양 행동했지. 하지만 막내아들도 대감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금세 알아챘어. 아버지인 대감이 자신을 보고 형제라고 칭하거나 대감의 이름을 물으면 이대감의 이름이 아닌 클라우스라고 이야기하다 금세 말을 바꾸곤 하였거든.

 

끝내 막내아들은 알게 되었지. 예전 자신을 찾으러 온 일곱 형제 중 클라우스의 혼이 이대감의 육체에 들어가 있단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막내아들은 서쪽 산에서 시간을 보냈어. 시간 선이 꼬여 제때 나타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자신을 찾으려고 이곳까지 와준 형제들에게 고마워하면서 말이야. 이대감, 즉 클라우스는 막내아들이 죽기를 원치 않았지만, 한편으론 얼른 가족들에게 함께 돌아가고 싶었지. 하지만 자신의 가족을 아끼던 클라우스는 죽음이라는 공포를 전해주기 싫어 꾹 참고 있었어.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막내아들은 매일 서쪽 산 절벽에 가서 쓰러지기 직전까지 울다 겨우 집으로 다시 들어오곤 했어. 그 모습을 마냥 바라볼 수 없었던 클라우스는 막내아들에게 서쪽 산에 가지 말라고 하였지. 막내아들은 하염없이 서쪽 산을 보고 그리워하다 보름달이 뜨는 밤, 클라우스 혼이 형제들에게 돌아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서쪽 산 절벽에서 울었어. 울다 지쳐 쓰러지면 자신의 몸을 통제하지 못하고 여섯째 벤, 이대감네 막내아들의 능력인 기이한 촉수가 막내아들을 집어삼켰지. 그리고 벤이 기억하지도 못할 때 몸에서 나온 촉수가 사람들을 찢어놓고 나면 이대감 몸으로 돌아온 클라우스가 얼른 와서 벤을 데려갔어.

결국, 가족을 잃은 슬픔에서 나온 무의식이 사람들을 해친 거야.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벤은 자신이 무의식 상태에서 그랬다는 것을 깨닫곤 극심한 자괴감에 빠졌어. 몇 번이고 자결하려고 시도하였지만, 클라우스가 번번이 방해했어. 그다음 보름달이 뜨는 날, 벤은 클라우스가 형제들에게 돌아갔겠거니 하고 서쪽 산으로 향했어. 클라우스는 낌새가 좋지 않아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음에도 형제들에게 돌아가지 않았어. 아니나 다를까, 벤이 집을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았어. 온 마을을 다 뒤져보았지만 벤은 여전히 찾을 수 없었지. 서쪽 산을 찾아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클라우스는 손을 떨며 서쪽 산으로 향했어.

 

그리고 벤은 그날 서쪽 산 아래 절벽에서 몸이 찢긴 상태로 발견되었단다.

 

그 후로 서쪽 산에서 보름달이 뜨는 날 들리던 울음소리는 웃음소리로 바뀌었어. 하지만 여전히 그 웃음소리에 홀려 절벽에서 떨어진 채 찢겨 죽은 사람들이 발견되면 우리는 일곱 형제가 왔다 갔구나 하고 짐작하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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